곡성e사람 / 희대의 예언가, 동양철학가 故 동천 김용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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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e사람 / 희대의 예언가, 동양철학가 故 동천 김용환 선생

겸면 상덕리 출신

동천 김용환 선생
[곡성신문]
김대중 구출위해 실세와 밤샘 토론

전두환(全斗煥) 5.18신군부세력은 자기들이 집권하는데 있어 김대중(金大中)씨가 눈 위의 혹이요,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그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국내는 물론 전 세계 민주우방의 여론이 들끓자 집행을 망설이고 있었다.

하루는 신군부세력 핵심요원 몇 사람이 극비밀리에 동천선생을 찾아왔다. 그들은 “선생의 고견을 듣고 싶어 찾아 왔습니다" 하면서 시내 모처로 안내했다. 당시에 신군부에서 내려온 요원들은 광주출신으로 일선 사단장과 모 기관장을 역임한 바 있는 전(全)모 예비역장군이 안내를 맡았고, 동천선생을 수행한 분은 전에 경찰서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동천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던 김재식(金)씨였다. 시내 모처에 도착한 일행은 대화로 들어갔다.

서울에서 내려온 요원들은 “앞으로 우리 나라 정세가 어떻게 전개되리라 보느냐, 세계정세는 어떻게 돌아갈 것 같으냐"며 여러가지의 유도성 질문으로부터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동천선생은 “우리나라는 경자(庚子=1960년)도수부터 국운이 돌아왔으니 앞으로 잘 되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세계정세는 미·소 · 중 3분 천하가 되어 잘 돼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군부요원들은 동천선생에 대해 이미 철저히 조사하여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4.19 학생의거, 5.16군사쿠데타, 땅굴사건, 박대통령 시해사건 예언등이 적중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기에는 광주경찰서장을 지낸 후 치안국정보과장으로 영전한 박배근(朴培根)씨가 대통령 생존시에 동천선생이 예언한 내용들을 청와대에 은밀히 보고 했기 때문이다.

그 중 땅굴사건은 미8군도 깜짝 놀랐다는 얘기가 있다. 그 정보는 우리 미군 밖에 모르는 극비정보인데 한국정부가 어떻게 알았느냐? 하고 경악했다는 사실 등등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군부요원들의 질문은 계속됐다.

당랑포선(蛇娜捕蝶)의 고사 인용

“김대중씨 사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대중씨는 민족의 소원인 남북통일을 앞당길 분인데 만약에 혹 그 분을 사형한다면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큰 손실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 국운이 돌아왔으니 전두환장군이 집권하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
“아니다. 그것은 일시적이다"
“김대중씨의 사형을 집행한다면 무슨 문제가 일어나겠는가?"
“좋은 질문이다. 김대중씨의 사형을 집행하면 전두환씨도 죽는다”
동천선생은 열을 올리며 소신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말을 신중히 들어보라. 중국의 고사에 이런 말이 있다. 당랑포선(幢螂捕蟬)과 당랑규선(幢螂蟬) 또는 당랑재후(螳螂在後)란 말이 그것이다”
이는 장자(莊子)가 남긴 고사인데, 눈앞의 이익과 욕망에만 사로잡히게 되면 자기 뒤에 자기를 노리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게 된다. 이를 견리망진(見利忘眞) 또는 견리망의(見利忘義)라고도 한다.

그 고사의 유래는 이렇다.
장자가 하루는 화살을 메고 밤나무 숲을 가는데 꾀꼬리 한 마리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았다. 장자는 그 새를 잡으려고 화살을 겨누고 자세히 보니, 그 새는 사마귀를 노리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사마귀는 자기를 꾀꼬리가 노리는 줄도 모르고 매미를 잡으려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잠자는 나도 누가 노리지 않나하고 뒤돌아보니 때마침 뱀이 장자를 향해서 달려들고 있지 않은가. 장자는 황급히 도망치려다 그만 물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옛 중국 춘추전 국시대에 오(吳)나라 왕 손권 휘하의 막강한 병력만 믿고 이웃 초(楚)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자 문무대신들이 그 계획을 취소하도록 극구 만류했다.

그러나 오왕 손권(孫權)은 “앞으로 나의 계획을 저지하려는 자는 용서치 않으리라" 청천벽력 같이 명령을 내렸다. 이 때에 소유자라는 신하가 오왕 앞으로 나아가 당랑포선의 고사를 예로 들려줌으로써 침공 계획을 저지시켰다는 고사에서처럼 앞으로 전두환씨가 만약에 김대중씨를 사형에 처하게 되면 국내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민봉기가 일어날 것이고 국제여론도 물 끓듯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혼란에 빠지면 국민의 지지를 얻은 또 다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전두환씨를 제거할 것이며 이들은 반드시 국민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근 30년 동안이나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해온 김대중씨를 죽인 전두환씨를 제거했으니 당연히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김대중씨를 처형하겠는가? 이 말을 들은 군부의 요원들은 “과연 동천선생의 말씀에 일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상경하여 그 내용을 자세히 보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후로 김대중씨는 사형집행이 보류 됐고 김대중씨는 이런저런 사실도 모른채 미국으로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동천선생은 갑자년인 1984년 음력 10월21일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광주의 큰 별이 떨어진 것이다. 선생의 향년은 76세였다.
< 낙하사> 사람이 어떻게 즐기면서 살아갈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즐기며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잘되고 보람되는 일이냐의 의미.


중대한 시국 큰문제 마다 예언 적중

광주시 북구 풍향동 광주교육대학 옆에서 오랫동안 대양(大洋堂)한약방을 운영하여 오다가 지난 1984년에 향년 76세를 일기로 작고한 고 김용환(金容桓) 선생은 난치병을 신통하게 잘 낫게 해주는 명의로서의 명성 못지않게 강호파(江湖派) 동양철학가로서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본 분이었다.

선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통찰하여 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사전에 예언함으로써 그 때마다 백발백중 적중시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이런 사실이 해외에까지 알려져 대만(자유중국)으로부터 초빙을 받아 다녀오기 도 하였던 분이다.

6·25동란, 9.28수복, 4·19 학생의거, 516군사쿠데타,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대통령선거 당락, 휴전선 땅굴사건, 월남전쟁 결과의 예측과 미국과 중국관계, 심지어 인공위성의 달나라 착륙관계에 이르기까지 예언한 분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새로운 국기(國旗)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느냐에 대해 그 구상의 도안까지 발표한 바 있다.

동천선생의 우국우세(憂國憂世) 예언들을 취재하기 위해 한 때는 신문, 잡지, 방송사 기자들의 취재경쟁도 치열하였다. 필자도 처음에는 취재차 몇 차례 찾아 갔었는데 만날 때마다 높은 학문과 동양철학이며, 천지 음양오행의 해박한 이론에 이끌려 나중에는 선생님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지금 필자를 운정(雲亭)이란 아호(雅號)를 지어준 분도 동천선생이다. 이제 그 하나하나를 써나가 보려고 한다.

이조판서 石村 尹用求 문하에서 공부

곡성군 겸면 상덕리에서 무오사화의 명현(名賢)인 문민공 김일손(金馹孫)의 17세손으로 1908년 10월 4일(음)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여 신동이라 칭찬받아온 동천선생은 일찍이 마을의 서당에서 학문의 기초를 익히고, 이어서 소년시절에는 송연재(宋淵齋) 문인이요 남원의 대학자인 영송 김재홍(嶺松 金洪在)하에서 학문을 강마한 뒤, 견문을 보다 더 넓히고 자 다시 구 한말에 이조판서와 예조판서를 역임한 바 있는 당대의 문필가로 명성이 높은 경기도 고양군 석촌 윤용구(石村 尹用求 1853-1906)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과 필법을 더욱 넓혔다.

그러면서 사서오경(四書五經)을 한번 배우면 밤새 줄줄 암기하였고 이와 관련된 고사(古事)까지도 줄줄 모두 암송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윤선생은 동천을 매우 예뻐하면서 대원군(大院君)의 난초묵화(墨畵)를 내놓고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가져가라고까지 할만큼 아까운 것이 없을 정도로 사랑해 주었다. 그러나 동천선생은 그때마다 겸손히 사양하여 받지 않았다하며, 그 대신 석촌선생께서 직접 쓰신 서예작품은 기쁜 마음으로 여러 점을 받아왔었다고 후일에 자랑 하였다. (그 때의 작품들은 장남이며 한약업사인 김택수씨가 소장 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리고 동천선생자신도 훌륭한 서예작품들을 광주의 흥무왕 사우인 장렬사(烈祠)등 여러 곳에 남긴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서오경과 필법을 연마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앞으로 왜놈들을 이겨 나아가려면 신학문에도 눈을 떠야한다며 스스로 조양학숙(朝陽學塾)이라는 학원을 설립하고 외지로부터 신학문에 밝은 선생들을 초빙하여, 멀고 가까운데서 40~50명의 젊은이들을 모아다 교육시키면서 한편으로는 면사무소에서 근무를 하다 광복과 더불어 사임하고, 한의업을 개설함과 동시에 동양철학과 심령공부에 매진하여 천지음양오행의 원리와 인체의 오운육기학을 터득하여 마침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絶對界의 영적세계를 왕래

6·25사변을 미리 예측한 선생은 마을의 외딴 근처 주변의 깊은 산천에 둘러싸여 고요하고 양지바른 대밭 숲속에 초가삼간의 움막을 짓고 속세를 멀리하고 숨어살며 심령수행(心靈修行)길에 들어가 6·25동란을 무사히 넘기며, 자기의 기(氣)와 우주의 기가 하나가 되어 운행할 수 있도록 끝없는 수행정진(修行精進)을 계속하였다.

솔밭보다도 산소가 많은 대밭에서 수련을 하면 댓잎이 땅에 떨어지는 미세한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으며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면 전생(前生)을 알 수 있는 숙명통(宿命通)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몸 안에 있는 사악을 깨끗이 물리치고 자기 마음을 신(神)과 연결해보려고, 속세와의 일체 접촉을 끊고 때로는 밤낮으로 경문(經文)을 외어 가며 며칠씩 침식을 거르기도 하면서 오로지 심신함양(心身涵養)에 매달리기도 하였다.

고요한 마음, 무아(無我)의 깨달음의 경지(境地)에 도달하여 현실세계에서 절대계(絶對界=우주 법칙 영적인 경지)로 올라(도달)가 다시 내려와서 평정심(平靜心)을 찾는 것,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를 깨닫기 위해 몸과 마음을 불태우고 담금질을 계속하였다. 그 과정에서 세번이나 기절하여 의식을 잃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수행은 인도의 요가철학과 일맥상통한 데가 있다. 인간은 끝없는 욕망으로부터 해탈하여 사악이 없는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지인지선(至仁至善)의 인간이 되는 것, 공명정대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갖는것, 이렇게 되면 세상이치가 보이기 시작하고 앞날을 꿰뚫어볼 수있는 안목이 스스로 트인다고 한다.

동천선생은 스스로 어느 정도 수행과 깨달음이 완성되었을 때 세상에 나왔다.

수리조합장때 홍수·가뭄예언 적중

동천선생이 한 번은 고향인 곡성의 한 수리조합장직을 맡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해 봄에 큰 비가 내려서 홍수가 날 걸 예견하고 각 저수지 물을 모두 방류시키도록 조치했다. 때는 그 해 농사를 위해 물을 미리 예비적으로 가두어야 할 시기인데도 오히려 물을 방류하라니…
“금년 농사를 어떻게 지으려고 물을 다 빼라하느냐"고 농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앞으로 4·5월에는 반드시 큰 비가 내릴 터이니 그 때 필경 저수지 제방이 무너질 염려가 있으니 지금, 물을 빼야 한다. 물은 큰 비가 내릴 때 다시 채우면 농사에 걱정이 없을 것이다"하고 설득했다.

과연 4·5월이 되자 큰 비가 내려 사방에서 저수지 둑이 무너졌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그 지방 농민들은 탄복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내기철이 다가와 모심기 적기가 닥쳤는데도 모심기에 필요한 저수지의 물을 방류해주지 않고 주변의 하천, 우물 등에서 끌어다 심도록 하니 이번에는 물을 달라 독촉이 빗발쳤다. 그러나 동천선생은 앞으로 가뭄이 기필코 닥칠 터이니 물을 아껴야 한다며 한사코 따라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런데 과연 예년에 없던 한발이 닥쳐 그 때에 가두었던 물을 효과적으로 사용토록 하여 그 해에 타지에 비해 물 걱정 없이 무난히 농사짓게 되니 과연 그해의 선수후한(先水後旱)을 예견한 ‘선지자(先知者)’라고 부르면서, 이 일화는 화제가 되어 중앙에까지 알려져 여러 지상에 보도가 잇따르고 그 때부터 동천선생을 도사(道士)라고 부르면서 더욱 유명해져서 산간오지의 동천선생의 은거지에는 당시에 약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金俊淵(김준연), 徐(서민호)씨 등을 비롯하여 경향 각지에서 크고 작은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줄을 이어 찾아와 시국과 장래를 의논하고 자문을 청하니 내방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기붕씨에 부통령후보 사퇴 권유

국가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까지를 예언하여 적중하자, 옛 자유당시절 5인방의 한사람인 곡성출신 국회의원 조순(趙淳)씨는 동천선생과 동행 상경하여 이기붕(李起鵬)씨와 면담케 하였다. 그 때 이기붕씨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동천선생은
“부통령직은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직을 자동 승계하도록 헌법에 돼 있는데 李의장의 건강은 이승만(李承晩)대통령보다 못하니 부통령후보를 사퇴하고 건강회복에 노력하는 것이 좋겠네요" 하고 권고하니,

“내 건강이 어때서요" 하며 李의장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렸을 뿐이니 뜻대로 하십시오" 하고 동천선생은 그 길로 내려와 버렸다.

이어 3 15부정선거로 기어코 부통령이 되려고 출마했으나 장면(張勉)후보의 부통령 당선이 확정적이자 李대통령이 “중단된 대구의 개표는 하나마나다"고 선연함으로써 이기붕씨는 낙선되고 장면 후보가 부통령에 당선됐던 것이다. 이어서 동천선생은 이기붕씨에게 “안녕히 가시라"는 매우 의미 깊은 한 장의 전보를 쳤다.

그 후 4. 19 학생의거가 일어났고 장기집권 했던 자유당정권은 무너지고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했으며 이기붕 일가족은 권총으로 자살함으로써 막을 내렸던 것이다.

인피레스 뿌린 방안의 파리신세

그에 앞서 3.15 정부통령선거에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대통령후보에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씨, 부통령후보에는 장면(張勉)씨가 출마하여 자유당의 대통령과 이기봉씨와 대결하였다.

“못 살겠다 갈아 보자" 라는 구호를 내건 야당의 한강백사장 유세장에 수 십만 인파가 모여 들어 민심이 야당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 무렵 곡성출신 윤추섭(尹鄒燮) 민주당 의원은 동천선생을 찾았다. 둘이는 평소에 허물없이 지내는 다정한 친구였다. 윤의원은 호주머니에서 종이쪽지 한 장을 꺼내더니 “이 두 사람이 국회의원에 나왔는데 누가 당선되겠는가?" 물으면서 음력의 생년월일을 제시했다.

동천선생은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하더니 “이 사람은 인피레스(당시의 파리약) 뿌린방에 들어간 파리 신세겠네."
이 말을 들은 윤의원은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이 노릇을 장차 어이할고..." 하고 긴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자네, 그 그사람이 누구이기에 그러는가?"
“우리 해공선생이란 말일세...
“애끼 이 사람아 내가 천기(天機)를 누설했으니 이 일을 어이한다.”

동천선생은 천벌이 두렵다하고 수국(木局)인 여수로 내려갔었고, 그 후 해공은 호남유세차 열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이리역 근방에서 심장마비로 급서(急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당시 李박사의 정기가 국내에 가득찼던 모양이다. 아무튼 동천의 예언이 적중했던 것이다.

박대통령 시해사건 예언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1960년도 초반에 주변의 간곡한 권유로 선생의 나이 50대 중반을 넘겨 광주로 이사를 하니 선생의 사랑방에는 항상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더욱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이 가운데는 병을 논하여 한약을 지으려고 온 손님들도 많았지만, 선생의 우국우세(憂國憂世)하는 말과 고사(故事)에 대하여 한 마디씩 듣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도 많았다.

1979년 10월 어느날 동천선생은 앞으로 상강(霜降)무렵에는 "나라에 큰 변고가 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말을 직접 들은 당시 전남일보 부사장 이었던 필자와 전라남도 상공국장 이용기씨, 奇고민씨, 오주(吳洲 그 후로 광주시 의회장을 역임)씨 등은 앞으로 일어날 변고가 무엇일까? 하고 동천선생에게 질문했으나 묵묵부답(默默不答)이었다. 그래서 필자와 이국장은 매일 틈나는 대로 만나서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했었다. 그런 가운데 상강날이 무사히 지나갔다. 李국장은

“예언이 안 맞는데.…. 상강날 아무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지나가지 않았는가?" 그러자 나는 “상강도수라는 것은 전 3일, 후 13일까지이니 좀더 기다려 보세"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10월 26일 밤 서울 궁정동 안가(옛 안기부의 朴대통령을 위한 밀실)에서 연회 도중에 朴대통령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큰 변란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이렇게 뜨겁게 국가변란을 예언하여 적중할 수가 있을까! 아는 사람들은 탄복했던 것이다.

땅굴사건·청와대 습격사건 예언

그 밖에도 많은 예언을 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여기에 몇 가지만 들어본다.

1. 남북한 앞날 전망에 대한 예언
2. 세계 앞날의 전망에 대한 예언
3. 6·25동란 발발과 ‘산중은거’의 부당성을 예언,
4. 9.28 수복 예언
5. 경술(庚戌)년 40일 한발(旱魃)을 예언.(수리조합장 재직 때)
6. 壬寅년 선 한발 후 수해 예언
7. 癸卯년 선 수해 후한발 예언
8. 한·일 국교가 경자년부터 시발된 것이라 예언.
9. 4. 19 학생의거 예언.
10. 소련의 수소폭탄 실험 예언
11. 5·16군사혁명을 예언
12.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인간이 달정복시기를 예언
13, 땅굴사건 예언,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 습격할 것을 예언
14. 달나라에서 인간이 생활할 수 없음을 예언
15. 세계는 미·소 · 중 3분 천하를 예언.
16. 국가 큰 변고 「朴대통령 시해사건을 예언.
17. 후천개벽설(後天開闢設) 지축이 바뀌면 북극의 빙하가 녹아서 일본은 점점 물속에 잠기고 앞으로 100년후면 우리나라는 제주도까지 육지가 이어질 것 이라고 예언.
18. 그 밖에 송광사, 대흥사, 선암사, 화엄사, 백양사 옥루기(玉樓記) 발표.
19. 통일 후의 새로운 우리 국가와 민족에 알맞은 새로운 국기의 제정을 건의하는 등 청와대에 수많은 건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글/ 운정 박진동 ‘광주비화’>
곡성신문 gssm19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