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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밥을 먹으면 건강하다”
퇴직후 고향지키며, 주말농장 운영하고파..
지난 12월 8일 곡성군 농업기술센터 대청마당에서는 이상철 군수와 윤영규 군의장, 졸업생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3기 곡성명품농업대학 졸업식이 조촐하게 진행됐다. 곡성명품농업대학은 지역 특화작목 전문농업인 육성을 목표로 지난 2월 28일 입학식을 시작으로 26명의 농업인이 블루베리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총 21회 100시간에 걸쳐 블루베리 재배방법 실습교육, 선진지 현장학습을 마치고 졸업식을 갖게 된 것이다. 교육기간 동안 학사운영 및 자치활동에 기여한 공로자와 학업우수자 등 5명을 시상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는데, 학업우수자로 설단숙씨가 수상, 블루베리 사업지원금까지 받게 되는 영광을 안았다.
퇴직 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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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기면 청계리 경주설씨
설단숙씨가 살아온 길은 남들이 좀처럼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1964년 곡성군 삼기면 청계리에서 아버지 故설경씨와 어머니 윤공례(94)씨 사이에 1남 5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고향에서 통명초등학교(19회), 삼기중학교를 마치고 광주로 나와 동신여고,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했다.
설단숙씨는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광주서부지사 장기요양운영센터장(2급)이다.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했던 그녀가 국민건강보험공단(당시는 의료보험조합)에 입문하게 된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모님을 돕기 위해 동생의 학비를 벌고자 했고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고향 땅, 곡성을 좋아해서이다.
아버지는 평생 삶의 지표
삼기면 청계리는 통명산 자락이 곱게 흘러내린 끝자락에 자리 잡은 산자수려한 마을로 경주설씨 자자일촌이다. 선친은 삼기 근동에서는 알아주는 아이들에게 구학문을 가르치는 서당의 훈장이었다. 지역에는 지금도 그에게서 학문을 익힌 사람들이 살고 있어 옛 스승을 흠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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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에게는 새롭게 변하는 세상의 신학문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회지로 나가 학문을 익히도록 적극 지원해 주었다. 설단숙씨도 선친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어린 나이에 광주로 유학을 나왔다. 급변하는 세상을 빨리 읽었던 혜안이 깊은 선친 덕분이었다.
선친은 당시 정치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신앙처럼 지지했으며, 민주주의를 외치며 데모하는 대학생들에게도 “데모도 생각이 밝고 똑똑해야 할 수 있다”며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을 자식들에게 심어주었다. 이러한 선친의 교육은 설단숙씨의 평생 삶의 지표가 된다. 그런데 그녀가 결혼하고 40일 후 1992년 3월 선친은 예순일곱 이른 나이에 작고하면서 청계리 시골집에는 어머니만 홀로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엄마 밥을 먹으면 건강해진다.
남편 이영태(64)씨와 결혼하기 전 그녀가 부모님을 책임지고 싶다고 하니 선뜻 동의했다. 남편은 노동조합 활동으로 몸이 약해진 아내와 선친이 작고하신 후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된다며 곡성으로 이사하여 함께 살자고 그녀를 설득했다. 1993년부터 삼기면 청계리에서 아들과 딸을 낳고 13년 간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장성 출신인 이영태씨는 직장이 있던 장성으로 매일 출퇴근을 했는데 소형차인 티코로 운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도 이같이 결정해 준 남편에 대해 “세상을 보는 시선과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이 따뜻하다”며 고마워했다.
친정어머니는 정이 많고 따뜻한 성품이었기에 할머니 품에서 자란 손자들이 한 점 흩트러지지 않고 바르고 우애있게 성장하였다.
2006년 직장 근무지가 곡성에서 광주로 옮겨지고 청계리 마을에는 자녀들과 함께 놀만한 또래 친구들이 없어 거주지를 광주로 옮겨야 했다. 어머니는 시골에 살고 싶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키워 오신 손자들이 외롭게 지낼까봐 안타까워 광주로 함께 이사하였고, 맞벌이를 하는 딸과 사위 대신 손자들을 돌봐 주시고 집안 살림도 도맡아 해주셨고, 평생을 남편과 자녀들에게 헌신하는 강인하고 조신한 분이셨다.
어머니는 손자들이 중학생이 되자 2015년 귀향을 서둘렀다. 도시 생활보다 시골에 살면서 교회도 나가고 마을회관에서 이웃들과 드라마도 함께 보고 밭농사도 지으며 사는 것이 평온한 삶이라는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 더불어 잘 살자
1988년 1월 1일 농어촌 의료보험이 시작되면서 곡성군 의료보험조합이 설립되었다. 설단숙씨는 1987년 11월 곡성군의료보험조합에 입사하여 현재 37년째 근무하는 최고참이며 의료보험조합의 산증인이다.
설단숙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 운동사에서 전설적인 투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1988년 곡성군의료보험조합은 직원들을 읍면사무소에 한두 명씩 배치하였고, 삼기면, 오산면, 겸면, 옥과면사무소에서 근무했다. 그 당시 공무원 노동조합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 공무원교직원의료보험 통합”을 주장하는 등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의료보험 직원은 공무원의 협조를 받기 힘들었으며 거리 투쟁에 나서면서 직장내외에서 수많은 핍박을 당했다. 당시 함께 하던 직원들은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 둘 노동조합을 탈퇴하여 결국 곡성에서 홀로 남아 의료보험 노동조합 깃발을 끝까지 지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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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노동조합 활동은 남편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남편 이영태씨는 전남지역의료보험노동조합에서 상근직으로 활동하면서 만났다. 곡성과 장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부당하게 조직을 운영하는 조합 대표이사에게 저항하면서 활동하였고 전남지역의료보험노동조합 조직을 이끌어 왔던 동지가 인생의 친구이자 평생 동지가 되었다.
1995년 주민등록 전·출입신청서를 확인해야 의료보험 자격관리를 하는데, 면사무소에서 협조하지 않고 방해하였고 의료보험조합에서는 이를 수수방관했던 일로 건강이 더 나빠졌다, 그러나 그 투쟁들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었던 옥과면 이모씨, 삼기면 김모씨 등 곡성군 농민회 간부들과 서울 광주 화순 등 전국에서 함께 투쟁해준 노조원들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과도기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설단숙씨는 지역의료보험노동조합 곡성지부장, 1991년 지역의료보험노동조합 전남지역위원장 직무대리, 전국대의원 등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많은 투쟁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이들 부부는 1999년 전국 의료보험노조원에 87일간 장기파업을 이끈 노조 집행부가 조합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보이자 이를 비판하는 글을 노조 사이트에 띄워 저항하였고, 노조 집행부로부터 징계를 받은 사건은 의료보험노조 필화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지역 직장 공무원교직원 의료보험 통합과 직장민주화가 당시 이들의 주요 주장이요 이슈였다. 더불어 잘 살아 보자는 것이었는데 지역과 직장 공무원교직원으로 나뉘어 있던 의료보험은 2000년에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통합하여 단일 보험자가 되었고 재정통합은 2003년에 되었다.
직장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지역 간 의료보험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과 관리운영의 효율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제도 기반을 마련하는데 정열을 쏟았던 이들은 20-40대를 사회보험노동조합을 이끌면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당시 의료보험은 지역의료보험조합과 직장의료보험조합 공무원교직원의료보험공단으로 운영했는데 2단계를 거쳐 통합을 했다. 1차 통합은 1998년 10월 1일 「국민의료보험법」에 따라 공무원교직원의료보험공단과 227개 지역의료보험조합이 통합하여 국민의료보험공단이 되었고, 국민의료보험공단곡성지사로 개편되었다.
2차 통합은 김대중 정부 당시 2000년 7월 1일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142개의 직장조합을 통합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출범하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곡성지사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현재는 순천곡성지사 곡성출장소이다.
공단에서 노조 활동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설단숙씨는 2005년 공단의 특별감사를 받게 되었고 업무처리에 대해 단 한건의 지적을 받지 않았음에도 직위해제와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아 행정소송까지 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고 한다.
2010년에는 공단 게시판에 “이사장님 이의 있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하여 직원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으며 공단과 노동조합에 대한 열정으로 부당함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소신을 지키고자 투쟁한 대가는 지금도 선연하다. 당시 공단본부 지시로 설단숙이 게시한 글을 삭제하도록 하라는 압박을 받은 남편이 지사장에게 한말은 그의 소신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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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설단숙이 주장하는 글은 본인의 판단으로 쓴 글이지 남편인 내가 시켜서 쓴 것이 아니다. 둘째 주장하는 글의 내용이 맞다. 셋째 내가 그 글을 삭제하라고 압박해도 삭제할 설단숙이 아니다. 주장한 내용으로 시정하는 게 맞다. 더 이상 억압하지 말라”
직장 내 민주화를 위한 치열한 투쟁의 댓가로 근무평정은 거의 꼴찌에 머물렀지만 업무에도 최선을 다해 일한 공로를 끝내 인정받아 2016년 팀장 승진을 하였다. 공단 본부가 있는 강원도 원주에서 5년간 근무 했을 때도 국민의 입장에서 제도를 설계하였고 노조활동에 열성이었던 노동조합의 역사요 산증인인 설단숙씨가 노동조합 현장을 떠난 것은 간부급으로 승진하면서 2021년 7월 조합원 자격이 자동 제외되었다. 공단 업무처리든 노동조합 활동이든 최선을 다해 임해온 모습은 37년을 일한 직장인으로서 투철한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다.
평생직장이었던 공단은 국민에게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을 서비스하고 사회보장에 기여하는 공공기관으로 국민을 위해 일한 것에 만족하며 가족을 지켜준 든든한 울타리였다. 후배들이 지키는 공단은 앞으로도 국민을 위한 조직이며 민주적인 직장으로 지속될 것이다.
사회단체 활동, 삶의 원동력
설단숙씨는 2000년 “함께하는 여성, 참여하는 여성, 생활 속의 여성운동의 기치를 걸고 창립한 광주여성민우회 창립 맴버이기도 하다. 모든 여성들이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인간으로서 삶을 실현하는데 든든한 동반자가 되는 길에 기여하고자 참여하였고, 지금도 평생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교육 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곡성중앙초등학교 학부모운영위원, 광주월계초등학교 학부모운영위원, 월계중학교 학부모 대표를 역임하면서 지역 교육 현장을 건강하게 지키는데 일조했다. 사회복지에도 관심이 많아 삼강원 등 30여년 동안 봉사활동과 기부도 지속하고 있으며 자녀들에게는 엄마가 평생 봉사하는 모습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간의 모범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곡성에서는 마당발로 통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무원노조, 교직원노조, 금로타이어노조, 농민회, 곡성성당 등 사회단체 회원들과 여권신장과 사회운동에 함께 했다.
배움의 끈을 놓지 말자
어렸을 적 꿈은 판사였다. 마을 사람들의 도장을 몰래 파 조합에서 대출을 받아 자신이 챙겨 마을 사람들의 원성을 샀던 사건 등을 겪으면서 바른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집했다. 그런데 고시공부를 하기엔 가정 사정이 어려웠기에 전남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꿈을 접고 취업전선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항상 배움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부족한 분야와 삶의 원동력이 되는 분야에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아들과 딸이 무럭무럭 자라고 생활에 여유도 생기면서 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여 사회복지사를 취득했고,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청소년교육을 전공하여 청소년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하는 등 스터디 모임인 아리솔 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 현재 전남대학교 문화재학협동과정 석사학위과정에 재학 중이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있다.
퇴직 후, 고향지킴이 주말농장 운영
설단숙씨는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있는 청계리 농장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지은 지 백년이 넘은 시골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콩 고추 참깨 등 농사를 짓는다. 농사일을 하면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기분이 상쾌하다고 한다. 남편은 장모님 잘 모시기를 바라 항상 지지해 주며 본인 관리가 철저한 멋진 옆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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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윗 뜸의 묵은 농경지를 갈아 훈김을 불어 넣은 600평의 주말농장에는 매실, 참깨, 콩, 배추, 각종 양념류 채소 등이 자라고 있다. 밭고랑에 제조매트를 깔고 매주 풀을 뽑고 베어내니 주변 농경지에 비해 잡풀이 없이 깔끔한 편이다.
농장에는 광주, 김해 영주 등지에 거주하고 있는 언니, 형부, 동생 등 가족들이 자주 찾아온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들이 화합의 단지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매년 12월 첫 주에는 4대가 모여 직접 농사지은 배추 무 양념들로 함께 김장을 하고 메주도 만들어 가족의 우애를 돈독하게 하고 이웃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설단숙씨는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농장을 가꾸고 싶은 열정으로 올해 곡성명품농업대학 블루베리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이는 퇴직 후 새로운 가치의 삶을 찾아, 고향의 산천을 지키며 전원생활의 꿈을 실현하고자 준비하는 것이다. 또한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매들이 시골집에 모여 노년을 함께 보내는 새로운 농촌 모델을 만들고, 귀농귀촌 생활을 하면서 소득을 창출하여 지역사회 공동체 활성화에 불씨가 되었으면 한단다.
인생 2막을 힘차게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새로움을 준비하는 것이다. / 박정하
박정하 gssm199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