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다산선생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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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 다산선생 풍수지리

풍수는 자연과학이다. 천문과 지리, 인본을 깊이 터득한 새로운 과학 풍수가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풍수지리학 박사/ 목사동면 출신
[곡성신문]
얼마 전에 지방행사에 참석하였다. 경향 각지에서 오신 분들과 점심을 하면서 “성리학이 조선을 망쳤고, 검찰 권력이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다”라며 세태를 비판했다. 여기에 많은 노장 사림들이 공감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조선시대 풍수가 왕조 붕괴에 묵시적인 영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정치는 풍수에 좌우지할 만큼 중요시했다. 당시 풍수에 유식한 사람이면 등용되기도 했다. 사대부들의 풍수 가치관은 학문에 버금갔다. 이런 세태에 풍수지리를 날카롭게 비판에 앞장섰던 분이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이 저술한 ≪풍수집의≫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지관의 아들, 손자들이 고관대작(高官大爵)에 등용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정승 벼슬한 자들이 앞장서서 명당이라면 조부모의 묘를 옮긴 사람치고 알 수 없는 재앙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다” 또 풍수의 시조인 도선, 이성계의 왕사는 자신의 종사를 끊었으며, 이의신(李義信), 담종(湛宗)은 절손(絶孫)했는데 “이것은 무슨 이치인가?”라며 풍수지리의 폐단을 질타했다. 너무나 많은 관료, 지방 유지 등 지식이라는 사람이 지나치게 치우쳐 7언 율시로 풍수 세상을 한탄했다.

燕子開基惜屢移(연자개기석누이) 제비가 집터 잡으면 옮기기 싫어하는데
만將泥點汚梁楣(만장니점오량미)
부질없이 서까래 여기저기 더럽히네
邇來風水渾成俗(이래풍수혼성속) 근래에 풍수설이 온통 습속을 이루니
疑亦禽中有地師(의역금중유지사) 생각하건대 새 중에도 지사가 있나 보다

시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 지도층이 풍수지리에 매료되었으면 ‘제비’의 동물을 빗대어 비판했을까! 이런 폐속(廢俗)을 바로잡기 위해 다산은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뒷동산(능내리)에 매장하고 지관에게 점지하지 말라”라며 유언장을 쓸 정도로 풍수지리를 배척했다. 그의 풍수관은 효심에 우러나온 마음으로 고인을 매장해야지 출세, 영달, 복록을 원하는 욕망으로 장례를 치러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이에 풍수 지관인 지창용 등 일부 전문가는 조선 후기 성리학의 영향으로 형세론과 형국론의 규격화에 갇혀 풍수의 요체를 터득하지 못하고 단면만 보았기 때문에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흔히 사람들은 “풍수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라고 말한다. 귀에 걸면 귀고리요, 코에 걸면 코걸이란 속담처럼 풍수의 자연 철학을 관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지나치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자칫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풍수는 자연과학이다. 천문과 지리, 인본을 깊이 터득한 새로운 과학 풍수가 도래하기를 기대해 본다.
곡성신문 gssm1999@hanmail.net